2023-04-26

경계를 넘어 실천한 일상의 기록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1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이너 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이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이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그간 이들이 꾸준히 행해 온 ‘실천’ 덕일 테다. 그래픽디자인을 기반으로 지면과 화면, 공간 등 다분야를 넘나들며 충실히 쌓은 프로젝트들은 금세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그 수가 빼곡하다. 이들이 스튜디오 설립 10주년을 맞아 201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한 결과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 <일상의 실천>은 일상의실천이 어떻게 시각언어로 일상을 실천해왔는지를 기록한 대규모 아카이브다.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10주년 기념 전시 전경 |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일상의실천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입니다. 그래픽디자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평면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양한 디자인의 방법론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일상의실천을 소개하는 문구로 사용된 문장이다. 2013년 설립된 일상의실천은 그래픽디자인을 바라보는 협소한 해석을 의심하고, 그래픽디자인이 가진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도구와 수단으로 시각언어를 구축하는 방법론을 전개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사회에서 발견된 문제의식에 대한 주체 또는 구성원로서의 발언, 현대미술의 방법론을 재해석하는 작업 등 의미에 부합하는 형식을 탐구함으로써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는 실험에도 시간을 쏟았다.

, 2014 | 제공: 일상의실천

2017년 열린 첫 번째 단독 전시 <운동의 방식>은 일상의실천이 디자인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그 안으로 개입하려 한 과정과 ‘디자인을 통한 운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한 자리다. 딱딱하고, 무겁고, 다소 경직된 느낌의 ‘운동’과 ‘예쁘고 보기 좋게 상품을 포장하고 광고하는 일’로 인식되는 ‘디자인’을 어떻게 묶을 수 있을까. 디자인이 그 자체로 운동의 방식일 수는 없을까.

, 2016 | 제공: 일상의실천

세월호 사건 이후 모든 생명의 존엄성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제강점기 치하 시인으로 등단한 김수영의 언어가 가진 경계성을 드러낸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등 디자인과 운동이 갖는 낯선 간극을 잇고자 노력한 작업들을 선보인 전시는 디자인과 노동, 운동과 실천, 일상과 사회를 지속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10주년 기념 전시 전경 |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는 한 디자이너가 쌓아온 문제 해결 과정과 결과를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 권준호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 <일상의 실천>은 일상의실천이 내내 품고 있던 막연한 다짐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적 실체를 갖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지난 10년간의 포스터 작업을 집약한 아카이브 월을 비롯해 거대 설치물 6점과 전시를 기념하여 새롭게 리뉴얼 한 웹사이트까지. 이들이 산업미술로서의 디자인이 갖는 표현과 발언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하여 행한 다채로운 시도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일상의실천 포스터 아카이브(EP Poster Archive)

2013-2023, 옵셋 인쇄, 피그먼트 프린트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일상의실천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비영리 및 문화·예술 단체, 커머셜 프로젝트, 그리고 자체 작업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그래픽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는 시도를 이어왔다. 작업의 첫 단계이자 프로젝트의 키 비주얼로 기능하는 포스터를 통해 각 디자인이 가진 방향성과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감정조명기구(FaceReader)

2019 / 2023 재제작, 표정 자동 분석 프로그램, 철제 펜스 위에 T5 조명, 비계 철골 구조, 3,000 × 3,000 × 1,200 mm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관람객의 표정을 분석해 조명 장치와 스크린에 감정의 변화를 출력하는 인터랙션 설치 작업. ‘우리는 얼마만큼 솔직한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며 타인과 교류하는가’라는 질문은,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 <감정조명기구>가 분석하는 인간의 감정과 표정은 7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더욱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표현과 정서 사이에 생각보다 먼 거리가 존재함을 체감하게 한다.

빨갱이(Bbalgangee, Pinko)

2019 / 2023 재제작, 목조 구조, 붉은색 타일, 미디어 인터랙션, 2,400 × 2,200 × 1,200mm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독재 체제와 국가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거칠 게 없던 시대의 언어는 냉전을 넘어 한국 사회를 나누고 가두는 첨병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 기괴한 언어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고 있을까? <빨갱이>는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든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홍진훤 작가의 사진과 검색엔진에서 일정 기간 동안 수집된 ‘빨갱이’라는 단어의 쓰임과 이미지, 그리고 남영동 고문 피해자의 증언에 기반한 텍스트가 더해져 오늘날 빨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살려야 한다(Keep them alive)

2016 / 2023 재제작, 비계 철골 구조, 6,000 × 2,400 × 1,000mm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살려야 한다>는 넓은 의미의 회복을 가리킨다.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외침을, 쉽게 잊히는 기억을, 망가져 가는 누군가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의 골격 형태를 지닌 작품은 한국 사회의 면면과 어슷하게 닮았다. 이 말은 아직 죽지 않은 현재를 가리키고 있다. 죽지 않았으니, 다시 말해 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직 쓰러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명 다시 살릴 수 있다.

나랑 상관 없잖아(it’s not my business)

2013 / 2023 재제작, 타이포그래피 레터링, 종이에 옵셋 인쇄, 7,000 × 2,400mm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광화문 광장으로 상징되는 ‘현장’과 바로 길 건너편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카페 풍경의 거리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일상과 사회적 갈등이 공존하는 그 거리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이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던 감정은 아마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냉소였을 것이다. 나랑 상관없잖아. 이 짧은 문장은 그렇게 ‘너’와 ‘나’를 구분 짓고, ‘네 문제’와 ‘내 문제’의 경계를 선명하게 한다.

골든실버타운(Golden Silver Town)

2019 / 2023 재제작, 3D 프린트 오브제, 가변크기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골든실버타운>은 노인 대상의 부동산 및 마케팅 전략이 넘쳐 나는 미래의 풍경을 예측해 본다. 실버타운의 입주자는 스스로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노령의 자본 계층을 가리킨다. 미래의 실버타운은 단순한 주거시설이 아닌 노령 인구의 세밀한 계급 현상에 가깝다. <골든실버타운>에서 설계되는 구조물은 상위 소비 계급으로 진입할수록 욕망이 과시된 형태로 위를 향해 증축된다.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고급 고층 아파트의 기괴한 형식을 닮은 구조물은 자본으로 계급화된 현재의 민낯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살이(Life in Seoul)

2016 / 2023 재제작, 사진 콜라주, 파나플렉스, 비계 철골 구조, 4,000 × 2,300mm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서울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투쟁의 한복판이자 올림픽이 열린 화합의 장이기도, 수많은 철거민과 희생자를 불러일으킨 폭압의 현장이기도, 또한 수많은 축제와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서울은 다양성의 공존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화해와 증오가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 기괴한 도시임이 분명하다. 독재와 투쟁, 축제와 반목, 개발과 희생 그리고 촛불과 태극기가 건네는 온갖 군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서울을 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글자 사이로 부자연스럽게 얽혀 있는 서울의 불완전한 면면은 지금 우리의 서울살이와 포개진다.

일상의실천 웹사이트(EP Website)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10주년 전시를 기념하여 그간의 작업과 자료를 정리하여 새롭게 리뉴얼 오픈한 웹사이트. 지난 10년간의 모든 작업물과 작업을 설명해 주는 텍스트, 참여 멤버 등의 상세 정보가 담겨있다. 전시장 내에서는 전시 인포메이션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프로젝트의 타입, 작업 연도, 클라이언트별로 정렬하여 볼 수 있도록 하여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구성원 | 사진: 김진솔, 제공: 일상의실천
전시 기획 일상의실천 (권준호, 김경철, 김어진, 김주애, 김초원, 안지효, 임현지, 정아람)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일상의실천, 무신사테라스

프로젝트
<일상의 실천>
장소
무신사 테라스 홍대
주소
서울 마포구 양화로 188, AK&홍대 17F
일자
2023.04.07 - 2023.05.16
시간
11:00 - 21:00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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