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9

소소하고 소박한 나만의 디자인, 스튜디오 소소나 ②

'부산 부산'하지 않는 나만의 디자인
스튜디오 소소나는 디자이너 소소나가 운영하는 1인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도심에서 항구가 보이는 부산 중앙동에 자리한다. 일본에서 '잡화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생활 조형 디자인과 공예를 공부한 그녀는 이곳에서 리소그래피 디자인 작업을 한다. 무엇보다 리소 특유의 맑은 색감에 매료되었다고. 버려진 쌀겨를 활용해 잉크를 만드는 친환경 행보도 비건을 지향하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 부산으로 돌아오기까지, 지역에서 리소그래피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해졌다. 부산 중앙동으로 직접 내려가 스튜디오 소소나를 찾았다.

디자이너, 소소나

—디자이너, 그리고 스튜디오 이름인 ‘소소나’가 본명이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브랜드명처럼 사용하려고 지었는데 이제는 저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어요. (웃음)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들 때 연습장에 ‘소소하고 소박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라고 적었는데 ‘소소나’는 이를 세로로 읽었을 때 얻은 아이디어에요. 받침이 없어서 발음하기도 편해서 부르기도 좋더라고요.

—앞서 일본어를 전공하셨다고 하셨는데 디자인은 독학하신 건가요?

국내에서 일본어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일본에 갔어요. 일본에서 디자인 또는 공예를 공부하고 싶어서 일본어 전공을 선택했는데 덕분에 학업도, 생활도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2년 동안 생활조형학과에서 디자인과 공예를 배웠어요. 일본어로 ‘잡화 디자인’이라고 말하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잡화’라는 건 내 방을 뒤집었을 때 떨어지는 모든 것이라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제 주변의 다양한 모든 것을 디자인하는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공교롭게도 인터뷰를 하는 오늘이 정확히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로부터 12년이 되는 날인데요. 이날 일본에서 학교 졸업식을 했었거든요. 비록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일본에서 취직해서 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내린 결정이 여전히 많이 아쉽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국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방황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내 ‘일본어’와 ‘디자인’이라는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회사를 찾아봤어요. 마침 일본어로 발행하는 관광 안내 책자 편집 디자이너를 모집하는 곳이 있어서 1년 반 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일본에서의 디자인 공부가 오늘날 작업에도 미치는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보다는 디자이너와 업체와 직접 소통하면서 그들이 디자인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디자이너님께 물어보고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디자이너로서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의 디자인을 좋아하고, 작업을 즐기며, 쑥스럽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찾아보고 공부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특히 오늘날에는 자신의 작업을 저평가하지 않는 태도가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덕화명란 캐릭터 상품 (사진 제공. 스튜디오 소소나)

—디자이너의 일에서 클라이언트를 제외할 수 없잖아요. 더욱이 처음 일할 때 독립해서 프로젝트를 맡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클라이언트 잡은 처음에 어떻게 시도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직접 시도하기 보다 다른 작가님, 디자이너님과 함께 단체로 일을 받거나 소개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따또가에 입주해 있을 때는 작가들끼리 만든 협동조합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덕화명란에서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를 받기도 했었죠. 캐릭터부터 스티커 제작 그리고 인형까지 만들어서 납품했었어요. 매번 직접 경험하면서 배워갔고, 어설픈 점도 참 많았죠.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 노하우가 있다면요?

최대한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요구에 맞춰서 작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노하우까지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제 생각을 말하는 편은 아니고, 이야기를 다 듣고 의견을 더하는 편이에요. 정확히 어떤 걸 원하는지 이해를 못 하면 다시 여쭤보고,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작업에 낯설어 한다면 조심스럽게 몇 가지 제안을 드리는 편이죠.

2022 도쿄 아트북 페어 모습 (사진 제공. 스튜디오 소소나)

—올해 함께 일해보고 싶은 클라이언트나 욕심나는 프로젝트도 있을까요?

한글 레터링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더 많이 공부해서 한글 타이포그래피 학회에서 진행하는 전시에 참여해 보고 싶어요. 또, 리소 인쇄로 만든 작품으로 ‘도쿄 아트북 페어’에도 부스로 참여해 보고 싶고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조금씩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이루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소소나 디자이너의 한글 레터링 디자인 (사진 제공. 스튜디오 소소나)

—레터링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으셨던 거예요?

예전부터 글자 적는 걸 좋아했어요. 편지도 많이 썼고, 서예를 배워서인지 ‘글자가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사용한 디자인이나 로고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특히 기존에 있는 폰트를 사용한 디자인이 아니라 직접 글자를 그리고, 만들어서 타이틀로 사용한 영화 포스터와 밴드 로고, 디자인 굿즈로부터 본격적인 관심이 시작된 것 같아요. 이재민 디자이너의 포스터와 김기조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좋아해요. 선을 똑바로 긋길 좋아하고, 종이도 똑바로 자르는 걸 잘하고, 줄 맞추고 열 맞추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글자를 그리는 게 저랑 잘 맞더라고요.

디자이너 소소나가 운영 중인 소소나 한글 레터링 계정

부산에서 디자인하기

소소나의 한글 레터링 중에서 부산을 상징하는 '바다'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사진 제공. 스튜디오 소소나)

—부산을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하자면요?

서글서글, 거칠거칠, 시원시원. 부산 사람들은 말은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한 것 같고, 도심에서 바다가 멀지 않아 시원하고 탁 트이는 느낌이에요. 또 서울과 달리 사람이 적으니 갑갑한 느낌이 없는 것도 좋아요. 솔직히 부산에 굉장한 애정이 있는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살기에는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부산 사람인가 봐요. (웃음)

—부산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기에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서울처럼 다양하고 많은 프로젝트가 수행되는 도시에 비해서는 일이 적어요. 하지만 오늘날에는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클라이언트들의 인식 변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부산에도 훌륭한 디자이너가 많고, 작업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부산보다는 서울’이라는 인식이 아쉬운 점이죠. 아울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비용적인 부분도 저렴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라고 해서 비용을 적게 받아야 하는 건 절대 아닌데 말이죠.

—반면에 부산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경험하는 이점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유대가 더 깊어지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분들이 많고, 공감하고 서로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부산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꼭 필요할까? 외려 디자이너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저 역시 굳이 부산 디자인을 강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있어요. 부산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관광 상품’ 이상의 디자인은 없을 것 같아요. 각각의 디자이너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있잖아요. 이것이 먼저 자리 잡고 ‘부산’이라는 단어가 가미되어 ‘부산 부산’ 하지 않는 디자인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디자인 잘하는 분들이 많으니 앞으로 멋진 디자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디자이너님이 추천해 주시는 ‘부산 디자인 스팟’도 궁금합니다.

먼저 영도의 ‘잭슨팹앤컵’. 4명의 목공예 작가님들이 함께 운영하시는 목공방 겸 카페인데요. 영도 청학동 높은 지대에 자리해서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좋아요. 무엇보다 목공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공구부터 직접 만든 가구까지 감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공간에는 나무 냄새가 풍기는데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덤입니다.

영도 청학동에 자리한 잭슨팹앤컵. 넓게 펼쳐진 영도 바다 풍경이 인상적인 곳 (사진 출처. 잭슨팹앤컵)

두 번째는 전포동에 오픈한 ‘포셋 전포점‘. 엽서와 카드를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리소 엽서가 입고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봤어요. 매력적인 공간에 많은 디자인 제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미묘북’을 추천하고 싶어요. 독립서점이자 북 셀렉 숍인데요. 사실 요즘 거의 안 갔는데 책방 지기님이 책 선택이 워낙 탁월하셔서 한 번 가면 지갑이 마구 열리는 바람에 방문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관련 책이나 책방 이름처럼 아름답고 묘한 책이 많아서 계속 둘러볼 수밖에 없어요. 어둡고 차분한 공간 분위기도 매력적이고요. 예약제로 운영 중이라 미리 예약하고 가셔야 해요.

글·사진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스튜디오 소소나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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