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요리하는 산업 디자이너의 그릇, 소일베이커

관심을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법

소일베이커는 디자이너, 셰프, 세라미스트(ceramist)의 시선으로 제작한 도자기 그릇을 판매한다. 2015년 신사동에 오프라인 공간을 오픈했고, 지난해에는 정동길에 쇼룸을 열었다. 지난 8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소일베이커를 이끄는 이는 바로 양혜린 대표. 그녀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에서 산업 디자인을, ICE(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 NY)에서 요리를 전공했다. 디자인과 요리의 영역을 모두 경험한 그녀의 관심사가 테이블웨어로 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심이 있다고 해서 이를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일베이커만의 디자인과 품질을 갖추고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숱한 노력이 있었을 터. 소일베이커의 브랜드 성장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Interview with 양혜린

소일베이커 대표

—브랜드 론칭 이전에 미국 뉴욕에서 산업 디자인과 요리를 공부하셨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다양한 재료로 일상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산업 디자인이 매력적이더라고요. 나무, 흙 등 자연 재료부터 플라스틱과 같은 인공 재료까지 다양한 재료로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먹는 것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디자인을 전공하고 나서 요리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어요. 요리도 디자인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거든요. 무엇보다 결과물이 맛있으면 행복해지잖아요. 덕분에 열정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뉴욕은 도시 그 자체로 크리에이티브 영역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디자인과 요리 산업이 발달되어 있는데요. 덕분에 두 분야를 공부하거나 일할 기회도 많이 열려 있어요. 이러한 환경적인 요소도 디자인과 요리를 전공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뉴욕에서 산업 디자인과 요리를 전공한 양혜린 대표가 론칭한 테이블웨어 브랜드 '소일베이커'. 개인 고객 뿐만 아니라 대형 레스토랑과 호텔을 위한 대량 주문도 제작한다.

디자인과 요리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잖아요.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요리를 배우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디자인과 요리 모두 정해진 답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두 분야 모두 기본 테크닉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그다음부터는 창의성이 중요해져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여전히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이런 점들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이러한 특징을 즐기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편안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웨어가 되고 싶다는 소일베이커

—산업 디자인과 요리를 공부하셨으니 테이블웨어 브랜드 론칭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겠네요.

맞아요. 디자인과 요리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테이블웨어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보니 편안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웨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이 훌륭한 테이블웨어는 가격이 너무 높았고, 반대로 대중적인 가격의 테이블웨어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죠. 좋은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테이블웨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습니다.

'흙을 굽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소일베이커

—그렇게 론칭한 브랜드가 ‘소일베이커’. 무엇보다 이름이 눈길을 끌더라고요. ‘흙을 굽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처음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도자기가 갖는 이미지가 지금과 사뭇 달랐어요.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하는 작품처럼 무겁고 진지한 느낌이 강했죠. 생활 식기로는 음식을 담는 기능만이 강조되었을 뿐 공예품처럼 디자인된 경우도 많지 않았고요.

일상생활에서도 좋은 디자인의 도자기를 편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름도 위트 있게 짓고 싶었습니다. 평소 흔히 접하는 빵을 만드는 과정이 도자기 제작 과정과 닮아 있거든요. 여기에 착안해 ‘빵 굽는 사람’ 대신 ‘흙 굽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고객들이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소일베이커의 브랜드 가치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일베이커는 자연과 사람의 힘으로 완성되는 도자기를 판매한다

테이블웨어에도 소재가 여럿일 텐데 흙으로 만든 도자기에 유독 관심이 있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도자기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식재료나 그릇 쇼핑에 다른 무엇보다 관심이 많았어요.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경험하고, 다양한 그릇의 사용이나 조화 등 먹는 것에 가치를 많이 두는 편이라 소위 도자기 사업까지 이어지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도자기는 흙, 광물, 물 등 자연에서 온 재료를 사람의 손으로 매만진 뒤, 다시 불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도움을 받아 탄생하는데요. 이 과정 자체도 흥미롭지만 완성된 도자기가 각기 다른 얼굴을 갖는다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요리를 전공한 산업 디자이너가 만든 테이블웨어는 일반 제품과는 분명 다르다고 생각해요. 특히 소일베이커 제품의 디자인 부분에서 강조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하네요.

소일베이커의 특징은 ‘다양함’, 그리고 ‘어울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음식을 담는 식기로서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미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죠. 일반 가정에서의 생활 식기,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기물 등 여러 상황에 맞게 사용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라인을 갖추게 되었고, 각각의 라인들을 함께 사용해도 이질감 없는 게 소일베이커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여주에서 제작되는 소일베이커의 도자기 제품들

소일베이커의 제품은 모두 경기도 여주에서 제작한다고 들었어요. 도자기의 고장이라고도 불리는 곳인데 단순히 명성만으로 생산지로 선택하진 않았을 것 같거든요.

경기도의 광주, 이천, 여주가 도자기로 유명하죠. 광주는 왕실 도자기로, 이천은 작가 도자기, 여주는 생활 자기를 주로 만들어요. 처음에는 여주의 공방과 공장들과 협의해 도자기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가격적인 메리트는 있지만, 디자인이 투박하고 생산 과정이 제한적인 한계점들도 분명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8년을 함께 해오면서 많이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많아 보여 뿌듯합니다.

소일베이커 도자기 제작 과정 모습

소일베이커의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도 궁금해요. 도자기는 자연과 사람의 힘이 모두 필요한 만큼 주의할 점도 있을 것 같거든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흙 반죽 – 성형(물레, 몰드, 핸드 빌딩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음.) – 건조 – 초벌(800도 정도 가마) – 유약 시유 – 재벌(1260도, 유약과 소지에 따라 조금씩 다름.)‘ 순서로 제작됩니다. 소지나 유약 등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이용해 사람의 손으로 만들고, 또 바람과 가마불의 도움을 받아 굽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요. 인내가 필요하죠. 이러한 점을 도자기의 매력으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소일베이커 도자기 제작 과정
소일베이커 도자기 제작 과정

여주 공장을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사진을 보니 도자기 제작량이 상당해 보이더라고요. 소일베이커가 주력하는 고객층도 궁금합니다.

요리와 디자인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시작해서인지 레스토랑의 니즈를 잘 파악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레스토랑에서의 쓰임새나 디자인에 대해 셰프님들과 많이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맞춤 제작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호텔이나 대형 레스토랑의 수요를 맞춘 대량 생산부터 파인 다이닝이나 소규모 레스토랑과 카페에 맞춘 소량 생산까지 가능해요. 간혹 브랜딩 단계부터 기물까지 함께 진행하는 레스토랑들도 있는데, 이때는 도자기 외에 기물 VMD까지 제작하기도 합니다.

소일베이커 정동 쇼룸 전경
소일베이커 정동 쇼룸 전경

지난해 9월에는 정동길에 쇼룸을 오픈했어요. 소일베이커의 시작점인 신사점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인상적인데요.

신사동은 도자기를 만드는 스튜디오, 사무실, 미팅, 입출고 등 많은 일이 바쁘게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생동감이 느껴져서 좋지만, 소일베이커 도자기를 온전히 소개하기에는 아쉬운 점도 있죠. 정동은 분위기 자체로 고즈넉하며 근대 문화와 역사가 숨 쉬는 곳이에요. 여기라면 우리 도자기와 공예품들을 꼼꼼히 감상할 수 있겠다 싶어 문을 열게 됐습니다.

소일베이커 정동 쇼룸 모습

한편 2015년부터 8년간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세요. 디자인과 요리와는 확연히 다른 영역의 일이잖아요. 운영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개인 사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사업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단순히 식문화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브랜드를 운영하는 일은 디자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습득하면서 헤쳐나가야 하는 점이 어렵죠. 팀원들이 늘어날수록 책임감도 더 많이 느끼고 있고요. 그래도 소일베이커를 찾아주시는 고객들의 반응을 볼 때면 뿌듯하기도 합니다.

소일베이커 정동 쇼룸에서 진행한 클래스. 신사점이 소일베이커의 제품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정동 쇼룸에서는 도자기를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다.

브랜드 운영에 있어서 소일베이커만의 원칙이 있다면요?

소일베이커는 편안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 식문화와 리빙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치 패션처럼 유행이 생기곤 했는데요. 유행에 반응해 단기간에 급성장한 브랜드들을 보면 소일베이커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소일베이크가 일해 온 방식과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테이블웨어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따뜻한 온(溫), 글 서(書), 온서는 도자기에 담긴 음식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검정 소지와 유약의 조합으로 탄생한 조용한 색감들이 그릇을 멋스럽게 한다. 그릇에 새겨진 카빙에서는 도자기의 깊은 멋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라인의 제품과 부담 없는 가격은 소일베이커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계절과 제철 음식에 어울리는 라인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추위가 매서워지면서 집에서 따뜻한 수프를 자주 해먹게 돼요. 이때, 자주 찾는 그릇이 ‘온서‘ 라인입니다. 특히 브라운의 따뜻한 톤과 묵직한 느낌의 블랙을 자주 쓰고 있어요. 이 외에도 ‘크럼즈‘ 라인은 흙이 지닌 본연의 따뜻함을 품고 있어 겨울에 잘 어울립니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소일베이커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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