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4

초대형 갤러리가 된 오페라하우스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 X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방화 커튼 공공미술 프로젝트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중 한 곳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 이곳에서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무대 위에서 특별한 전시가 함께 열린다. 해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한 점씩이 공연 전과 인터미션 때마다 말 그대로 ‘펼쳐지는’ 것. 갤러리는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176제곱미터 넓이의 장막, 즉 방화 커튼이다.
이미지, 영상: museum in progress 유튜브

이 특별한 ‘장막 전시’는 오스트리아의 비영리 협회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Museum in Progress)’의 공공 예술 프로젝트 중 하나다.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는 1990년 설립된 이래로 대중이 예술을 접하는 방식이 변화해가는 데 관심을 갖고 여러 다른 분야 간의 협업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술관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미술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박물관의 미래를 탐구하고자 한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의 방화 커튼 프로젝트는 1998년 시작되어 올해 이미 16회차를 맞은, 손꼽히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방화 커튼에 작품을 전시할 아티스트는 매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관장이나 큐레이터, 평론가 등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선정된 아티스트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면, 이를 가벼운 그물망 형태의 천에 인쇄하여 커튼에 자석으로 부착하는 방식이다. 매해 시즌이 시작되는 11월 경부터 그 다음 해 여름까지 새로운 작품이 연간 60여만 명의 관객 겸 관람객들을 만난다.

2023/24 시즌에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 작품 ‘솔라리스’를 전시한 안젤름 키퍼.
이미지: museum in progress 인스타그램

이달 8일부터 시작된 2023/24 시즌에는 독일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작품이 걸려 있다. 키퍼는 다양한 문학, 신화, 역사 속에 기원이 있는 주제를 지질학적인 질감을 이용해 표현하는 작가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위해, 키퍼는 폴란드 출신 거장 SF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의 1961년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솔라리스(Solaris)’를 선보였다. 소설 ‘솔라리스’는 외계 행성에 사는 미지의 존재와의 비정형적인 접촉, 혹은 접촉하려는 시도와 그와 관련해 겪는 초월적인 경험에 관한 작품이다. 수만 광년, 어쩌면 그 이상 떨어진 먼 우주의 심해가 키퍼의 작품에 담겼다.

빈 오페라 극장에서는 매해 새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장막을 공개하는 오프닝 이벤트를 연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2022-23 시즌 작품인 카오 페이(Cao Fei)의 ‘The New Angel’ / 2021-22 시즌 작품인 베아트리스 밀라제스(Beatriz Milhazes)의 ‘Pink Sunshine’,
2020-21 시즌 작품인 캐리 매 윔스(Carrie Mae Weems)의 ‘Queen B (Mary J. Blige)’ / 2017-18 시즌 작품인 존 발데사리(John Baldessari)의 ‘Graduation’.
이미지: museum in progress 인스타그램

1998년 방화 커튼에 처음 자신의 그림을 건 아티스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 카라 워커(Kara Walker)였다. 이후 제프 쿤스(Jeff Koon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줄리오 파올리니(Giulio Paolini) 등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아티스트들이 이곳에 작품을 전시했다.

왼쪽: ‘moving practice’, 오른쪽: ‘raising flags’ 전시 작품 중.
이미지: museum in progress 인스타그램

1990년 빈에서 설립된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는 이 밖에도 현대미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꾸준히 탐구한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방화 커튼 프로젝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프로젝트가 새로운 공간에 전시될 목적으로 창작한 오리지널 작품들로 구성된다. “미술관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뮤지엄 인 프로그레스’의 프로젝트들을 본 뉴욕 뉴뮤지엄의 예술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의 소감이 이들의 활동을 요약한다. 최근에도 빈 중앙역 계단 광고판에 자기 성찰과 선악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전시한 ‘움직이는 연습(moving practice)’과, 어려운 시기의 사회적 공존에 관한 질문을 담은 깃발들을 빈 강을 따라 게양한 ‘깃발 게양하기(raising flags)’ 시리즈 등을 진행하며 그 예술의 무대를 넓혀가는 중이다.

박수진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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