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7

호암미술관 재개관, 건축 헤리티지를 재해석하다

상호관입(相互貫入)의 공간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호암미술관이 1년 반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했다. 한남동 리움미술관이 활발하게 전시를 이어가는 가운데,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도 재개관 소식을 알린 것이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이뤄졌다. 하나는 전시장을 포함한 실내 공간 디자인, 그리고 박물관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함축한 MI 디자인이 그것이다. 특히 이 두 가지 영역의 재정비를 통해 전통과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는 동시에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하나의 미술관, 두 개의 장소'로 운영하고자 하는 미래 전략과 포부를 담은 점이 인상적이다.

호암미술관의 실내 공간 리노베이션을 진행한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소장 그리고 새로운 MI 시스템을 개발한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피플'과의 인터뷰를 지금 만나보자.

Interview with 이성란 소장(이건축연구소)

호암미술관 재개관을 위한 내부 공간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처음에 어떻게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요청으로 호암미술관 리모델링에 참여했다. 건축, 구조, 전기, 기계, 소방 등 건축적인 내용과 인테리어를 모두 아우르는 리모델링이라 이전에도 함께 작업했던 이건축연구소와 진행하게 된 것 같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건축물의 헤리티지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들었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디자인 콘셉트 또는 키워드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서로 꿰뚫어 들어감을 뜻하는 ‘상호관입(相互貫入)’을 공간 개념으로 삼았다. 또한, 기존의 건축 소재와 조화를 이루도록 돌(석재), 나무(목재), 철(금속)을 최소한으로 가공해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 외부와 내부, 건축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공간을 지향했다.

호암미술관 전경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은 근대 건축의 웅장함과 전통 가옥의 디테일이 겹쳐 있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호암미술관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했는지도 궁금하다.

 

2021년 8월 처음 방문했을 때 주차장에서 본관에 다다르기까지 단아하고 아름답게 가꿔진 전통 정원과 그 사이에 노늬는 공작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호암미술관 본관은 콘크리트로 만든 근대 건축물 양식으로 당시 건축된 국립민속박물관과 청와대처럼 약간은 권위적인 이미지가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호암미술관이 처음 소개되던 1982년 4월 한 신문의 내용을 빌리자면 “호암미술관은 1층은 불국사의 백운교와 같은 아치형 돌계단을 기단 구조로 하고, 그 위에 청기와의 단층 건물이 얹어져 있고, 내부는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라고 소개된다. 외형에서 보이는 건물의 형태는 거대한 아치 구조를 전면으로 전체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고, 이를 통해 내부로 진입하면 외부와 달리 큰 열주와 형태의 기둥이 내부를 지탱하며 근대 회랑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층은 한국 근대 건축 역사에 있어서 이슈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 호암미술관의 기존 아이덴티티로 각인되어 있어 한국적인 헤리티지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보다 내부에서 시각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외부의 정원과 연결되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공간 리노베이션 작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호암미술관만의 건축적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호암미술관이 리움미술관과 함께 또 하나의 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우선한 것이 전시실의 현대화였다. 320평 규모의 전시실과 함께 호암미술관의 상징과도 같은 중앙홀의 콘크리트 구조는 석재와 마루, 금속의 꽃 창살문으로 꾸며져 전통과 근대의 양식이 공존한다. 근현대의 콘크리트 한옥이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과 기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으로 마감한 점이 이곳만의 건축적 특징이다.

기존 실내 건축의 양식과 소재를 최대한 살리는 동시에 컬러톤을 통일해 조화를 꾀한다.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리노베이션의 경우 무엇을 남기고, 교체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호암미술관의 경우 그 고민이 더욱 깊었을 것 같은데. 그 기준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기존의 공간은 미술관 외관에 깃든 한국 건축 양식의 고전미와 컨템퍼러리의 혼재가 내부까지 연결되는 호암만의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건축적 헤리티지는 원형 기둥, 중앙계단, 중앙 석재월등에 표현되어 웅장하고 다소 무거운 무게감으로 표현되었다. 반면 이번 리노베이션에서는 소재와 컬러를 통일하여 단순하게 적용해 기존 호암의 건축적 헤리티지를 유지하고 현대적, 미래지향적 감각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나?

 

예컨대 중앙홀 전면에서는 창업주이신 선대 회장님께서 직접 공수해 시공한 대리석과 기둥의 화강석을 보존하고, 확장 공간에도 동일 화강석을 주로 시공했다. 기존 계단 난간의 골드 컬러는 특수 페인트 실버로 작업해 신·구 재료가 하나의 컬러 톤으로 보이도록 했다. 덕분에 메탈 작품이나 나무 가구를 들이더라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동시성을 지닌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워크숍룸, 사무실, 화장실 등의 공간에도 기존의 돌과 나무 금속의 자연적 소재와 컬러, 양식을 최소 가공으로 적용해 서로 어우러지도록 했다.

아트숍을 겸하는 안내데스크는 자연물 소재를 통해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

물리적으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안내데스크’를 설치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호텔 리셉션과 같은 넓은 프런트 데스크부터 디자이너의 아트 퍼니처, 그리고 따뜻한 무드까지. 어떤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공간을 디자인했는지 듣고 싶다.

 

호암미술관 외관과 중앙홀에는 다양한 한국적 표현들이 있다. 이를 이루는 선과 면, 비례로부터 시작해 공간을 풀어갔다. 선은 호암의 힘 있는 건축으로부터 공간을 지지하는 역할을, 면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늑하게 감싸주는 배경의 역할을 한다. 이런 요소로 이루어진 담담하고 정적인 공간이 그 속에서 벌어질 동적인 장면과 어우러질 때 가장 이상적으로 보이게 표현하고 싶었다.

안내데스크 중앙에 설치한 곽철안 작가의 아트 퍼니처는 재개관을 기점으로 고전과 현대 미술을 모두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일 것을 암시한다.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아트숍을 겸하는 안내데스크 모습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중앙홀이 소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화강석과 대리석으로 단정하고 차가울 수 있는 분위기라면, 확장 공간인 안내 데스크는 자연적 소재(나무)를 사용하고 재해석된 한국적 디테일을 적용했다. 통일성 안의 다양성을 지향했는데 공간의 완성도를 위해 리움 숍을 디자인했던 스튜디오 라이터스와 협업해 완성했다. 아울러 기존 호암미술관에서는 한국 고미술 작품 위주로 전시를 선보여왔지만 재개관 이후부터는 경계 없는 작품을 전시한다는 암시를 느낄 수 있도록 곽철안 작가의 아트 퍼니처를 설치했다.

외부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여오는 '차경'이 돋보이는 2층 라운지 공간. 나무 벤치는 황민혁 작가의 작품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2층 공간도 이번 리노베이션에서 주목할 곳으로 꼽힌다. 특히 외부의 자연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여오는 넓은 창호가 인상적이다.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팁을 주자면?

 

프로젝트 초기에 현장에 올 때마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와 녹음이 짙은 산을 바라보면서 내부에서 정원이 보이면 얼마나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을까 상상했다. 테라스로 나가서 연못과 산의 풍광을 본다면 ‘차경’을 경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싶어 2층 창문턱을 과감히 철거했고, 통창과 슬라이딩 창으로 교체했다. 아쉽게도 안전을 고려해 외부 테라스로 출입을 제한하게 되었지만, 황민혁 작가의 나무 벤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희원과 자연 풍광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Interview with 오디너리피플

지난 1년 반 동안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MI 디자인을 개발했다. 앞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의 말에 따르면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이 ‘하나의 미술관, 두 개의 장소’로 통합적인 전시 기획과 운영을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두 미술관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는 점을 지속해서 의식해야 했을 듯싶다.

 

2021년 리움미술관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해 리움미술관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을 작업한 후, 호암미술관 MI 개발까지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앞서 여러 회의를 통해 두 미술관의 관계나 앞으로의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이덴티티 디자인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오히려 호암미술관이 지닌 특성에 보다 집중하고자 했다.

계단 형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4:3:2:1의 비례

로고 디자인에서 ‘픽셀’처럼 보이는 요소가 흥미롭더라.

 

픽셀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픽셀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요소는 아니다. 우리가 생각한 건 ‘4:3:2:1의 비례’와 이 비례를 이용해 운영되는’MI 시스템’이었다.

상향과 하향, 양방향으로 통하는 계단과 같이 호암미술관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가치 즉, 전통과 역사를 전승하며 그 가치를 배우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꿈꾸게 됩니다. 호암미술관의 MI는 계단의 형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4:3:2:1의 비례 값에 바탕을 둔 조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율은 순차적으로 쌓인 우리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앞으로의 미래를 시사하며 때로는 3:2:1로 또는 4:3 등으로 다양한 매체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로고부터 사이니지까지 미술관 전체를 일관된 양식으로 감싸 호암미술관만의 시각적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호암미술관 MI 디자인 콘셉트 설명글
호암미술관 MI. 심볼과 로고 타입
로고 타입의 가로 폭 비례가 적용된 심볼. 4에서 1로 좁혀지는 계단 형상을 띈다.

호암미술관의 영문 명칭 ‘HOAM MUSEUM OF ART’에 적용한 로고 타입도 궁금하다.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MI에 적용한 영문 서체는 ‘뉴하스그로테스크’다. MI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길 바란 요소는 4:3:2:1 비례 값이었기 때문에 복잡한 형태를 가진 서체보다 간결한 형태의 서체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HOAM’, ‘MUSEUM’, ‘OF’, ‘ART’ 단어 사이의 간격도 의도적인 배치인가?

 

심볼과 로고 타입이 함께 배치된 락업 형태를 우선 제작했다. 이후 이를 심볼과 로고 타입으로 나눴다. 따라서 심볼에 적용된 4:3:2:1의 가로 폭이 각 단어 배치의 가이드로 적용되었는데 MI 콘셉트를 잘 드러낸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한편 심볼의 경우 H를 1로 시작해 M이 4로 끝나는 구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생각한 계단은 4로부터 시작해 1로 좁혀지는 형상이었다.

호암미술관 새로운 MI 컬러 시스템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MI 디자인 컬러 시스템도 궁금하다. 유의한 점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기존 컬러 웜그레이를 계승했고, 호암미술관이 지닌 자연과 대비될 수 있는 포인트 컬러를 선별했다. 미술관 주변의 자연 경관이 지닌 색이 워낙 아름답고 다양해서 이와 대비될 수 있는 선명한 컬러 조합을 상상했다.

MI 디자인은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 매체 곳곳에 적용되는데 매체별로 어떤 기준을 마련해 적용했는지 궁금하다.

 

심볼의 가로폭 및 획의 두께, 로고 타입의 배치, 사이니지에 적용되는 가로세로 비례, 인쇄물에 적용될 그리드 등 앞서 언급한 4개의 숫자를 활용한 비례를 각기 다르게 적용했다.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사이니지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MI가 적용된 픽토그램

한편 새롭게 개발한 MI는 호암미술관 굿즈에도 적용됐더라. 특히 피크닉 매트는 심볼을 세로로 압축한 이미지로 독특한 인상을 주던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상품도 있었나?

 

굿즈의 경우 미술관에서 제작했다. 다만 우리가 제안 단계에서 MI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로 여러 가지 굿즈 목업을 보여드렸는데 그중 일부 반영된 것들이 있어 반갑더라. 개인적으로 연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귀엽다.

리뉴얼한 MI를 적용한 호암미술관 굿즈 (사진 제공.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리뉴얼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정구호

MI, 사이니지 오디너리피플

총괄 설계 및 디자인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소장)

디자인 협업 라이터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오디너리피플, 삼성문화재단

장소
호암미술관
주소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시간
화 - 일 10:00 - 18:00
(매표 마감 17: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매년 설날(음력) 및 추석 당일 휴관)
링크
홈페이지
Art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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