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7

김수자 작가가 파리에 띄운 무지개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호흡> 전
파리 한복판에 위치한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Galeries Lafayette Haussmann)은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쇼핑 스폿이자 머리 위로 펼쳐진 거대한 돔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은 그 자체로 관광 명소다. 과거, 갤러리 라파예트의 설립자 테오필 반 데르(Théophile Bader)는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기 위해 문화 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특히, 그는 유리 지붕을 설계해 풍부한 자연광을 유입시킴으로써 그랜드 홀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진열된 상품을 아름답게 비추는 럭셔리 바자르(luxury bazaar)를 꿈꾸었다. 갤러리 설립자는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건축가 페르디낭 사누(Ferdinand Chanut)에게 돔 디자인을 의뢰했다. 건축가는 높이 43m에 이르는 네오 비잔틴 양식의 돔을 디자인했으며 물결 모양 구조로 인해 빛을 드라마틱 하게 실내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Vue intérieure du grand hall et de la coupole d’origine,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carte postale, 1912. ©Galeries Lafayette
Vue extérieure de la coupole des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à sa construction, photographie, 1912. ©Galeries Lafayette

여기에 유리 공예가 자크 그루 버(Jacques Grüber)는 외부 환경에 따라 하루 종일 변하는 자연광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강렬한 색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자 청록색에서 주홍색까지 다채로운 컬러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고안했다. 단순히 예쁜 지붕을 넘어서 마법처럼 황홀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철공 작업은 에두아르 솅크(Edouard Schenck)가 맡았으며, 전체적인 돔 작업은 1912년 6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간 계속됐다. 건물이 완성되고 나서 수많은 이들이 백화점으로 몰려들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사람들은 거리보다 높은 고도에 위치한 옥상 테라스의 공기가 훨씬 더 깨끗하다고 여겼으며, 탁 트인 도시 전망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 대전 중 스테인드글라스는 철거되었고 이후에는 흰색 창으로 교체되었다.

Kimsooja, Test d’installation To Breathe par JADE, entre-deux coupole,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2022. ©Galeries Lafayette
Kimsooja, Simulation To Breathe, entre-deux coupole,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2022. ©Kimsooja Studio
Courtesy of Galeries Lafayette and Kimsooja Studio, Photo by Jaeho Chong

건물이 완공된 후로 무려 111년이 지난 오늘, 자크 그루버의 최초 디자인처럼 갤러리 라파예트의 돔은 다시 컬러풀한 활기를 되찾았는데, 그곳에 한국의 김수자 작가가 있다. 김수자의 <호흡(To Breathe)>은 갤러리 라파예트의 상징이자 건축적 유산인 유리 돔에 특수 필름을 적용해 자연광을 무지개 색으로 변환하고 퍼지게 한다. 이 독특한 무지갯빛은 사람들이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함께 움직이며 그 강도나 방향이 시시각각 변화해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이처럼 찰나의 순간에 바뀌는 빛은 김수자 작가가 강조하고자 한 ‘빛의 덧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Evocation de To Breathe, coupole des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Galeries Lafayette
Vue intérieure de la Coupole des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photographie, 1912. ©Galeries Lafayette

작가는 매일 전 세계에서 십만여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는 북적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빛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날씨에 따라,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빛에 반응하는 살아 움직이는 작품인 <호흡>은 그녀 작업에 중심이 되는 무위, 즉 논두잉(non-doing)과 논메이킹(non-making)의 개념을 반영한다. 여기에서 논두잉과 논메이킹이란 어떠한 것을 만들거나 조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설치를 위해 12일 동안 660개 판유리로 총 1,000㎡의 표면을 뒤덮었다는 후문이다. <호흡>은 기존의 건축물을 성찰하고 승화시켰다는 사실 외에도, 한 세기 이상 시대를 초월해 과거와 현재를 섬세하게 연결하고, 기념물이 간직한 역사적인 기억을 되찾는다는 의미도 지닌다.

Kimsooja, 2016. Photo Giannis Vastardis. ©EMST, Athènes et Kimsooja Studio

김수자 작가는 “갤러리 라파예트 내부에서 돔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 그 웅장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내가 본 유리 구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돔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그 완벽함에 흥미를 느꼈고, 동시에 내가 이곳에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예상했지요. 이와 더불어, 수많은 방문객들과 여러 상점에서 만들어내는 시청각적 소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작업을 위해 돔과 돔 사이의 테라스 공간을 확인했을 때, 옥상과 연결된 이 독특한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하고 활성화시키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이로써 사람들이 주위 환경을 인식하며 복합적이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1984년 방문한 이래로 사랑해 온, 매혹적인 도시 파리에서 <호흡>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Kimsooja, Respirar. Una Mujer Espejo - To Breathe - A Mirror Woman, Crystal Palace, 2006. Photo Jaeho Chong.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Madrid et Kimsooja Studio
Kimsooja, To Breathe, Centre Pompidou-Metz, 2015. Photo Thierry Depagne. ©Centre Pompidou-Metz, Institut français_Année France Corée et Kimsooja Studio
Kimsooja, To Breathe, Centre Pompidou-Metz, 2015. Photo Thierry Depagne. ©Centre Pompidou-Metz, Institut français_Année France Corée et Kimsooja Studio

한편, 1957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과 뉴욕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는 김수자 작가는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에서 직물, 조명, 소리를 활용한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히 작업하고 있다. 1998년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2013년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을 대표한 바 있다.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커미션을 계기로 시작된 <호흡> 시리즈는 퐁피두 메츠 센터(2015), 리움 미술관(2021) 등에서 소개되며 때와 장소에 따라 늘 새로움을 전하며 호평받았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완성한 아이코닉한 유리 돔과 함께하는 친밀한 빛의 경험은 오는 6월 30일까지 가능하다.

설립 테오필 반 데르

건축 페르디낭 사누

유리 돔 자크 그루 버 

참여 작가 김수자

유승주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김수자 스튜디오, 갤러리 라파예트

프로젝트
김수자 <호흡(To Breathe)> 전
장소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주소
40 Bd Haussmann, 75009 Paris, 프랑스
일자
2023.04.14 - 2023.06.30
주최
갤러리 라파예트
주관
갤러리 라파예트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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