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0

낯설고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들다, 프로덕션 디자인 팀 ‘반아트’ ①

프로덕션 디자인, 그 무궁무진한 세계
비주얼을 구상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빚어내는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 전통적으로 영화 미술을 일컬어 왔지만, 시각 요소가 필요한 영역이 늘어나면서 보다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게 됐다. 반아트(VANART)는 영화는 물론 뮤직비디오와 광고, 야외 뮤직 페스티벌 등을 오가며 신선한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프로덕션 디자인 팀이다.
핫펠트 ‘satellite’ MV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vanart.kr

특히 이들의 다채로운 뮤직비디오 작업이 두드러진다. 뮤직비디오는 비교적 빠르게 제작되고, 러닝타임이 짧으며,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인기 있는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라면 공개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런저런 반응을 쏟아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과 부담 아래에서 흥미로운 비주얼을 탄생시키는 방법은 뭘까? 반아트를 이끄는 박유미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Interview 박유미 프로덕션 디자이너

반아트 미술 감독

1.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일

반反아트라는 이름의 프로덕션 디자인 팀을 이끌고 있어요. 이름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MTV를 보며 자란 비디오 키즈예요. 성인이 된 후 여러 미디어를 접하면서 ‘화면 미술’에 어느 정도 공식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 틀을 깨고 싶어서 ‘뒤집을 반反’을 붙였습니다. 또 우리가 하는 일이 화물차, 즉 밴(VAN)에 짐 싣고 다니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반아트의 로고는 붉은 대각선. 이름에 담긴 의미를 표현한 것. 사진 제공: 박유미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죠. 소품부터 세트까지 두루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요. 미술 감독으로서 소화하는 일의 영역이 궁금합니다.

매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미술 전반의 콘셉트를 스케치, 도면, 사진 등으로 구상하는 ‘콘셉트 디자인’ 단계로 시작합니다. 그 후 연출팀, 제작팀, 세트팀, 소품팀, 촬영팀, 조명팀, 의상팀 등 분야별 팀과 협의하고 세부 계획을 세우는 ‘프리프로덕션’을 거칩니다. 그리고 나서는 ‘프로덕션’ 단계입니다. 미술팀원들과 함께 예산에 맞춰 세트 디자인, 세트 데코레이션, 소품 디자인에 착수하고 촬영에 들어가죠. 현장을 관리 감독하고 촬영이 끝난 후 세트와 소품을 정리하는 일까지가 제 영역입니다.

많은 사람과 협업하는 촬영 현장. 사진 제공: 박유미

크레딧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라는 직함을 모두 보았어요. 아트 디렉터와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미술 감독입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개념이 국내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아트 디렉터라고 통칭하기도 했죠. 프로덕션 디자이너(미술 감독)는 카메라 안에 보이는 모든 배경, 즉 세트와 소품을 총괄합니다. 아트 디렉터(미술 팀장)는 미술 감독을 도와 미술 팀원과 협의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출판이나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트 디렉터라는 직함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저는 늘 크레딧을 ‘프로덕션 디자인 팀 반아트’라고 전달해 드리지만 아트 디렉터로 바뀌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합니다.

영화와 뮤직비디오, 앨범 아트워크 등을 모두 작업하고 있죠. 여러 매체를 두루 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아트의 모토는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을 하자는 거예요. 그런 일이라면 매체를 굳이 가리지 않고 시도해 봅니다.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일이다 보니 무척 몰두해서 작업하고요. 일을 하면 할수록 요즘은 매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또 여러 매체를 오가며 작업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현장 분위기가 다 다르고 다양하거든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다른 현장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우원재 x 미노이 ‘Ghosting’ MV 현장.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 우원재 x 미노이 ‘Ghosting’ MV

2. 매체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것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네레이션〉에서 영상과 앨범 아트워크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영상 작업의 경우 영상에서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하지만, 앨범 아트워크는 팬의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요소를 넣는다고요.

영상과 앨범 아트 모두 캐릭터에 과몰입해서 분석하면서 작업하기는 합니다. 다만 앨범은 ‘소장한다’라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구매자가 두고두고 꺼내 볼 때마다 또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룹의 경우 멤버별 특성이나 매력이 드러나도록 방대하게 자료를 조사하는 편입니다. 또 그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가지고 싶은 앨범을 만들려면, 모든 요소가 대놓고 직접적이거나 일차원적으로 보여서도 안 되겠죠. 너무 추상적이지는 않으면서도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려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소품을 직접 제작하게 되었어요. 또 제가 케이팝 산업을 아주 잘 아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한걸음 떨어져서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스트레이 키즈의 앨범 〈MAXIDENT〉 아트 관련 작업. 스트레이 키즈 멤버들의 드로잉을 발전시켜 3D 모델링을 거쳐 실물 오브제로 제작했다.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위 작업 과정.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제작한 오브제는 앨범 재킷 사진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맨 왼쪽 사진은 〈케이팝 제네레이션〉에 출연해 관련 이야기를 전하는 스트레이 키즈 승민 ⓒ TVING, 그 외 사진은 〈MAXIDENT〉 컨셉 포토 속에 등장한 오브제들 ⓒ JYPE

다채로운 뮤직비디오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뮤직비디오를 비교적 많이 작업하고 있죠. 특별히 선호하는 매체인가요?

반아트라는 팀이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한 홍보수단이 인스타그램뿐이었어요. 팔로워 0명에서 시작해 마케팅 없이 지금까지 왔죠. 월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매체에 상관없이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뮤직비디오 분야에서 인지도가 생겼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더욱 자주 하게 되었네요.

음악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구상하고, 구체적인 비주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듣고 싶어요.

뮤직비디오 작업의 경우, 대략적인 키워드와 콘셉트, 그리고 음원을 우선 전달받습니다. 팀원들과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들어요. 가사에는 집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요. 그리고 주어진 콘셉트를 상기하면서, 추상적인 느낌부터 개인적인 경험까지 열어놓고 토론합니다. 토론을 하며 교집합을 찾아가죠. 이를테면 ‘올해 3월에 나오는 이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해야 현시대를 관통하는 비주얼로 보일까?’를 던져 놓고 이야기합니다. 최대한 남들이 하지 않은 독창적인 작업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요. 늘 보이는 것, 타인의 작업물을 비슷하게 작업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더군요.

작업이 이뤄지는 사무실. 사진 제공: 박유미

야외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디에어하우스’의 아트도 담당했습니다. 자주 선보였던 작업과 사뭇 다른 작업이었을 듯해요. 너른 대지에 작업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어요?

우리가 주로 선보여 온 작업의 경우, 관객들은 현장을 ‘카메라의 눈’을 통해서 봅니다. 디에어하우스 페스티벌은 현장에 관객이 존재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거대한 대지,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동선, 사운드·조명 시스템을 고려한 무대 디자인, 장시간 야외의 바람을 견딜 수 있는 구조물, 환경을 생각하는 태양열 조명, SNS로 공유될 장식적인 부분… 정말 생각해야 할 요소가 많아요. 수천 명이 유튜브를 통해 보는 미술과 수천 명이 2박 3일 동안 먹고 자고 놀며 느끼는 미술은 완전히 달랐어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우리 팀은 물론 세트팀, 조경팀 모두 얼굴이 새까매져 있어요. 그렇게 고생하는데 왜 매번 기다려지는지 모르겠어요. 애증인 것 같아요.

디에어하우스 준비 과정. 사진 제공: 박유미
완성된 페스티벌 공간. 사진 제공: 박유미

3.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는 것으로

여러 작업에서 필요한 소품을 직접 제작했죠. 구상, 디자인, 제작까지 모두 소화하려면 팀이 여러 역량을 모두 보유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팀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반아트는 미술 감독인 저와 팀장, 팀원들로 구성돼 있어요. 반아트와 더불어 자매회사인 디자인사무소 공장 정은숙 대표가 건축을, 동빙공업 정종선 대표가 프롭 마스터(Prop Master)*를 맡아 서로 협력합니다. 디자인사무소 공장의 건축 현장에 다 같이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동빙공업의 소품 제작 일이 많이 밀렸을 때 우르르 달려가기도 하는 식으로요. 반아트가 큰 프로젝트를 맡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설계나 제작 면에서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각자 맡은 바를 완벽하게 해냅니다. 의지가 되지요.

* 소품 담당자. 프롭 마스터는 소품을 만들거나 수배하고, 조립하며, 안전하게 쓰이도록 하는 모든 과정의 책임자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긴밀하게 소통한다.
뉴이스트 콘서트를 위한 셋업.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위 셋업 제작 과정과 실제 연출 모습.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스트레이 키즈 ‘Lonely.st’ MV를 위해 제작한 소품 일부.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이렇게 다양한 소품을 제작하면 사후 처리나 관리는 어떻게 해요? 커다란 소품도 많은 만큼 보관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질문이네요. 반아트는 아직 작은 회사이지만, 미래에 문화나 교육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사용한 소품들을 광주에 있는 작업실에 차곡차곡 아카이빙해 뒀습니다. 제가 박물관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요. 외국에선 미국 디즈니나 뉴질랜드 웨타 워크숍(Weta Workshop), 국내에선 참소리박물관에 갔을 때 시대별로 소품을 보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내가 사용한 소품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사명감을 품고 있습니다.

제작한 소품 일부. 사진 제공: 박유미

한정된 예산과 자원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하는 일이겠죠. 정해진 자원 안에서 멋진 결과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요?

예산 규모가 어떻든 간에, 예산은 언제나 모자라기 마련입니다. 결국 아이디어가 예산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죠. 그 아이디어를 위해서 잘 먹고 잘 쉬고 또 공부합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손발이 고생합니다.

스트레이 키즈 ‘Venom’ MV 작업 과정.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실제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는 작업 모습. 이미지 출처: 반아트 인스타그램

▼ 인터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2편으로 연결됩니다.

글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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