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31

한국에 온 문제적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엄숙한 리움 로비가 소란한 지하철 광장으로 변했다? 전시 제목 설치물에 사뿐히 앉아 있는 비둘기 떼, 로비 기둥에 기대어 앉은 노숙자, 자전거를 타고 요리조리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꼬마 아이. 이들은 모두 전시 작품의 일부이다. 리움미술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를 1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으로 리움미술관의 로비와 전시장 1, 2층에서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Maurizio Cattelan Portrait, Leeum Museum of Art, Photo by studioj_kim_je_won 리움미술관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실제로 보면 60대 멋쟁이 이탈리아 남자이다. 그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몸담게 된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처럼, 그는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해왔다. 그의 작품은 종종 #도발적인 #악동 이미지로 해석되는데 전시를 보고 나면, 그는 도발만 하는 게 아니라 토론을 이끌어내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워낙 쇼킹한 이미지라 한번 보면 잊히지가 않는데, 잊히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KKK 단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쓴 거대한 코끼리의 눈은 왜 이렇게 슬퍼 보이는가, 누구를 형상화한 것인가? 몸집은 아이 같은데 정면에서 보면 히틀러 얼굴을 한 ‘Him’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마르셀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는 동물을 뜻밖의 장소에 등장시켜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령>(2021), <비디비도비디부>(1996),극사실적인 조각 설치 <아홉 번째 시간>(1999)을 비롯하여 자화상에 해당하는 <찰리>(2003) 등을 포함한 작업 다수를 선보인다.

Comedian, 2019, Fresh banana, duct tape,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리움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지난해 리움미술관에 부관장으로 부임한 김성원 부관장이 처음으로 직접 큐레이팅 한 전시로, 기자간담회에서 줄곧 전시 설명을 진행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 조각을 한 시기는 2001년, 스웨덴 미술관을 위한 커미션 작업이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스웨덴은 중립국이었지만, 뒤에서 나치를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히틀러를 볼 때 스웨덴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질 것이고요. 또 그 조각이 오랜 시간이 흘러 2023년에 한남동에 왔을 때 어떻게 해석될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부분입니다.”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 <그>(2001)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유발한다. <코미디언>은 덕테이프로 벽에 붙은 바나나 하나로 미술 제도의 한 가운데에서 작품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다. 또한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은 특정 종교 및 맥락을 초월하여 권위와 억압에 대한 열띤 토론을 주선한다.

Him, 2001, Platinum silicone, fiberglass, pigment, human hair, clothing, shoes, 101 × 41 × 53 cm,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리움미술관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는 한편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거부한다.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이처럼 스스로를 희화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현실 비평가의 면모를 보인다.

 

전시와 연계해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다수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 기간 동안 카텔란의 작업 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아티스트 토크와 전시 기획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의 큐레이터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또한 카텔란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작가 연구 강연 시리즈에 김영민(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동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역사 연구자)이 강연자로 참여한다. 이외에 글쓰기를 매개로 작품을 재해석하는 장혜령(소설가, 시인)의 이미지 쓰기 워크숍과 카텔란이 기획∙출간한 잡지와 출판물을 열람할 수 있는 리딩룸, 예술 출판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보는 리딩룸 세미나도 진행된다.

Ι 동훈과 준호, 2023, 나무, 스티로폼, 스테인리스 스틸, 옷, 신발, 소품, 가변크기

Ⓒ heyPOP

여기 노숙자가 있다. 도시 곳곳에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는 이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곳인 미술관의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의외의 장소에 놓인 노숙자 연작은 1996년 최초 발표된 이래로 관객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첫 작품인 <안드레아스와 마띠아(Andreas e Mattia)>를 본 관객은 이를 진짜 노숙자로 오해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2년 후 위스콘신 대학 캠퍼스에 <케네스(Kenneth)>라는 이름으로 노숙자 모형이 전시되자, 누군가 대학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 팻말을 더해주어 작가도 모르는 사이 투쟁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얼굴 없이 웅크리고 있는 모형은 사회에서 소외된 노숙자를 직면하도록 하는 동시에 미술관에 들어오기에 적합한 사람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Ι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가변크기

Untitled, 2001, Platinum silicone, epoxy fiberglass, stainless steel, human hair, clothing, shoes,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리움미술관 제공

뜬금없이 바닥을 뚫고 머리를 내민 인물이 있다. 비정상적인 경로로 전시장에 침입한 인물은 작가 본인인 카텔란을 많이 닮았다.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서는 마치 그림을 훔치려는 듯 18 세기 네덜란드 대가의 회화가 잔뜩 걸린 방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기 어렵다. 마리오 모니첼리(Mario Monicelli) 영화 감독의 1958 년 작품 <마돈나 거리에서 한탕(I Soliti Ignoti)>에서 전당포에 침입하려고 구멍을 뚫었지만 웬 아파트 부엌으로 나오게 된 주인공처럼 황당한 실수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Ι 우리, 2010, 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천, 옷, 신발, 78.5 × 151 × 80 cm

We, 2010, Wood, fiberglass, polyurethane rubber, fabric, clothing, shoes, 78.5 × 151 × 80 cm,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by Kyungtae Kim 리움미술관 제공

두 남성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침대가 놓여있다. 양복을 입은 두 남자의 모습은 장례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둘 다 카텔란의 얼굴과 무척 닮았다. 쌍둥이인지, 도플갱어인지, 복제 인간인지 모를 두 인물은 서늘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고 고약한 농담 같기도 하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이 일종의 예술적 실천이 되기도 한다. 196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두된 개념미술 운동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대표 주자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는 1973년 자신을 알리기에로와 보에티라는 두 사람이 합쳐진 쌍둥이라고 선언한다. 관객을 향해 마치 두 명의 같은 사람이 나란히 걸어오는 듯한 사진 작업 <쌍둥이(Gemelli)>(1968)는 개인과 사회, 질서와 무질서를 왕복하는 작가의 분열적 존재와 실천을 대변해 준다.

Ι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All, 2007, Carrara marble,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by Kyungtae Kim 리움미술관 제공

바닥에 나란히 놓인 아홉 개의 조각. 구체적으로 묘사된 신체 부위는 없지만 천으로 덮은 시신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희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디어를 통해 참사의 현장이나 죽음의 재현을 간접적으로 마주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전 세계의 사건 사고 중 한 장면을 펼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아홉 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 표현은 18 세기 이탈리아 예술가 주세페 산마르티노(Giuseppe Sanmartino)의 <베일을 쓴 그리스도(The Veiled Christ)>처럼 숭고한 존재감을 뿜는다.

김만나 편집장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리움미술관

프로젝트
〈WE〉
장소
리움미술관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일자
2023.01.31 - 2023.07.16
시간
화-일 10:00 – 18:00
김만나
15년간 피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네이버 디자인판 편집장으로 온라인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다. 유머 감각 있고 일하는 80세 할머니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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