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30

매력적인 165년 턴테이블 디자인의 역사

화보집 <혁명, 턴테이블 디자인의 역사>
바이닐은 다른 음반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불편한 물건이다. 가격대도 더 높고, 물리적 충격에 약한 데다 습도와 같은 보관 환경도 중요해서 관리하기마저 까다롭다. 그런 바이닐이 카세트 테이프와 CD, 음원의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계속해서 우리 주위에 자리를 지켜온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닐의 아날로그적인 음질과 손에 잡히고도 남는 커다란 크기도 물론 매력적이다. 하지만 바이닐의 인기 상당 부분이 그 기능과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턴테이블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판 위에 조심스럽게 바늘을 올려둘 때의 그 신중한 감각, 플레이를 누르면 가장 먼저 들리는 지지직거리는 소리. 공간 한 구석을 차지하며 가구처럼 인테리어의 일부가 되는 턴테이블은 시각적으로도 개인 취향을 반영하고 만족감을 주는 물건이다.
2011년 Gabriel / DaVinciAudio Reference 턴테이블|이미지: DaVinciAudio

예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Phaidon Press)가 지난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상에 등장했던 턴테이블의 디자인을 모은 화보집을 만들었다. 뉴욕의 오디오 회사 오디오아트(Audioarts)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하이엔드 오디오 장비 전문가 겸 수집가, 기든 슈워츠(Gideon Schwartz)가 그 방대한 역사를 정리했다.

책 〈혁명, 턴테이블 디자인의 역사〉 표지|이미지: Phaidon

20세기 초부터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획기적인 발자취를 남긴 턴테이블들, 또 아름답고, 놀랄 만큼 특이한 디자인의 턴테이블들을 시대별로 다룬 이 책의 제목은 <혁명, 턴테이블 디자인의 역사(Revolution, The History of Turntable Design)>. 턴테이블 기기의 디자인과 바이닐 제작 기술이 어떤 역사적, 문화적 영향력을 남겨왔는지에 관해 300여 개의 이미지 자료를 이용해 총 264페이지의 ‘도감’에 눌러 담았다. 저자 슈워츠는 턴테이블 모델들이 모두 저마다 다른 제작 방법, 설계 방법, 재생 방법 등을 갖고 있으며, 이로써 각각의 고유한 사운드가 생성된다고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은 디자인의 일부가 되고, 바이닐의 매력이 된다.

턴테이블의 역사는 165년 전,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턴테이블인 에디슨의 축음기가 만들어진 것이 1877년이었다. 소리를 기계적 진동으로 바꾸어 녹음용 바늘이 그 진동을 원통형 판에 기록하고, 재생용 바늘은 그 진동을 소리로 재생했다. 에밀 베를리너가 이 원통형 판을 원반형으로 바꾸면서 지금과 같은 바이닐과 턴테이블의 형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슈워츠는 “외형과 톤암, 카트리지 디자인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기술은 그대로이며 턴테이블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라고 설명한다.

1950년대 SK4 턴테이블|이미지: Braun

1956년, 디터 람스(Dieter Rams)가 디자인한 브라운(Braun)사의 ‘SK4’는 지금까지도 빈티지 클래식 턴테이블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모델이다. 직사각의 미니멀한 깔끔한 디자인, 화이트 컬러 본체에 덮인 유리 덮개 때문에 ‘백설공주의 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저자 슈워츠는 “디터 람스의 깔끔한 라인과 기능 위주의 단순한 디자인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디자인에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적었다. 디터 람스의 스타일로부터 영감을 받은 유명 브랜드들 중에는 애플(Apple)과 무인양품(Muji)이 있다.

초기 디제이들이 클럽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SL-1200 턴테이블|이미지: Technics 인스타그램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가정용 턴테이블의 시대가 왔다. 기존의 전문적인 느낌이 줄고, 부피도 작아졌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일본의 업체들이었다. 전 세계 대중음악 산업에서 로큰롤이 부상하면서 일본의 전자제품 업체들은 공장에서 턴테이블을 대량생산해 저렴한 가격에 수출했다.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의 ‘가구’와 같은 매력은 없지만, 턴테이블과 바이닐을 대중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고유의 디자인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1940년대에 ‘카스가 라디오 유한회사’로 출발해 이 즈음 턴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던 켄우드(Kenwood)사의 KD 시리즈다. 슈워츠는 ‘KD-500’이 턴테이블 디자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샤프Sharp사의 ‘옵토니카Optonica’를 비롯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모델 여럿에 영향을 미쳤다. 이외에도 J. C. 베르디에(Verdier)가 디자인한 ‘라 플라틴(La Platine)’, 자디스(Jadis)사의 ‘탈리(Thalie)’, 웰 템퍼드 랩(Well Tempered Lab)의 제품들이 이 시대의 턴테이블 디자인을 대표한다.

Thalie 턴테이블의 받침판은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자디스는 음질을 최고 품질로 보호하기 위해 정밀하게 세공했다고 소개한다. 무게는 무려 80kg이다.|이미지: Jadis Electronics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걸쳐 힙합 음악이 메인스트림에 등장하면서 턴테이블은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게 됐다. 1970년대에 디제이들이 선호한 모델 중 하나는 테크닉스(Technics)사의 ‘SL-1200’이었다. SL-1200을 디자인한 오바타 슈이치는 디제이들을 만나 그들의 요구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한 후 1970년대 후반에 이 모델을 개량한 ‘SL-1200MK2’를 내놨다. 힙합, 테크노, 디스코 비트를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하고 튼튼해졌다. ‘SL-1200’ 시리즈는 지금까지도 가장 마지막 자리 숫자를 하나씩 올려가며 업데이트되어 디제이들의 애정을 받고 있다.

Planar 3의 2016년 모델. 화이트, 블랙, 레드의 세 가지 컬러로 출시됐다.|이미지: Rega

영국의 레가(Rega) 역시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이어 온 턴테이블 제조업체 중 하나다. 슈워츠의 설명에 의하면, 비용 대비 효율이 좋은 턴테이블을 만든다. 1977년 출시된 ‘플래너(Planar) 3’ 모델은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다. 스위스의 토렌스(Thorens), 덴마크의 베르그만(Bergmann)과 뱅앤올룹슨(Bang & Olufsen), 캐나다의 크로노스 오디오(Kronos Audio) 모두 오디오 장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 받고 사랑 받는 명품 브랜드들이다.

Proscenium Black Diamond VI Master Reference 턴테이블|이미지: Walker Audio

방대한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는 제품은 무려 12만5000달러(한화 약 1억6700만원) 가격의 2021년 미국 워커 오디오(Walker Audio)사 제품, ‘프로시니엄 블랙 다이아몬드 VI 마스터 레퍼런스(Proscenium Black Diamond VI Master Reference)’ 턴테이블이다. 정전기가 축적되는 것을 줄이고, 모든 미세한 파동의 영향을 제거해 주는 특수 처리된 미세한 재료를 부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책의 설명이다.

책에는 이 밖에도 전자기기라기보다는 고가구의 모습을 한 턴테이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됐던 독특한 디자인의 턴테이블, 기타 피크를 닮은 턴테이블 등 흥미로운 제품과 디자인을 소개한다. 영어판만 출간되어 있으며 정가는 74.95파운드(한화 약 12만 원)이다.

박수진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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