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0

어른이 읽는 만화 『거짓말들』 낸 작가 미깡

“팍팍해지는 우리 삶에 힘이 되어 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2014년 다음웹툰(현재 카카오웹툰)에서 공개된 『술꾼도시처녀들』은 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샀다. 술 좋아하는 여자 세 명이 주인공인 작품은 유쾌하다가 코끝을 찡하게 하고, 심금을 울리다가 한잔 당기게 했다.

이 작품을 그린 작가 미깡은 어떤 이일까? 독자의 입장에서 (멋대로) 상상해 본다면, 우선 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끝내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술꾼도시처녀들』은 지난해 티빙에서 이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되었다. 큰 인기를 끌어 시즌 2 제작이 확정됐다.

그래서일까? 미깡이 그리는 작품은 현실과 단단히 닿아 있다. 30대 여성의 일과 우정을 다루고(『술꾼도시처녀들』), 결혼과 비혼을 키워드로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며(『하면 좋습니까?』), 새 시대의 공주를 탄생시키기도 한다(『잘 노는 숲속의 공주』). 인상적인 이야기 사이에 빛나는 재치와 산뜻한 유머를 숨겨두는 건 작가의 특기 중 하나다.

『거짓말들』 표지

이달 출간된 미깡의 최신작 『거짓말들』에는 그 정수가 담겨 있다. 작가는 ‘거짓말’이라는,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소재로 아홉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짓말에 속거나 아프고, 설레거나 구원받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므로 『거짓말들』은 결국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일 테다. 흥미진진하면서도 맘속 깊은 데를 푹 찌르는, 마침내 용기와 위로를 안기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 미깡을 인터뷰했다.

Interview with 미깡

『거짓말들』 소개 이미지 일부

신간 『거짓말들』에는 ‘거짓말’을 키워드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거짓말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단편집은 기존 작업물을 모은 게 아니라 ‘이제부터 단편을 한 10편쯤 그려서 책을 내야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거예요. 처음부터 테마를 정하는 게 가능했고, 그렇게 하면 짜임새도 있고 이야기 만드는 재미가 있겠다 싶었죠. 제일 먼저 구상한 작품이 「A의 거짓말」이었는데, 거짓말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확 들어왔죠. 우리가 매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때론 구원을 받기도 하는, 거짓말의 다면적인 요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하는 거짓말,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거짓말, 나를 속이는 거짓말 등 다양한 거짓말이 담겼습니다. 수많은 거짓말 중에서도 어떤 거짓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여기 나오는 거짓말 중 어느 하나를 더 특별히 생각하는 건 없어요. 아홉 개 이야기, 아홉 개의 거짓말을 각각 즐겨 주시고, ‘과연 이 거짓말은 뭘까? 괜찮은가?’ 골몰해 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실제로 지금까지 읽으신 분들 반응을 보면 가장 인상적인 작품(거짓말)을 다 다르게 꼽으시더라고요.

「A의 거짓말」
「나만 아는 거짓말」

빠르게 읽어 내려가다 여러 번 왈칵했습니다. 친족 간 성폭력, 아동 학대, 부당 해고와 과로 등 사회 문제와 닿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거짓말’이라는, 언뜻 사적이고 사소해 보이는 키워드와 사회 이슈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중심이 되는 스토리에 사회적 문제를 슬쩍 가져와 보여주는 방식을 좋아하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설계하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특별히 고충은 없었어요. 다만 사회 문제를 다룰 때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잘못된 정보를 그려선 안 되니 굉장히 조심합니다. 친족 성폭력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을 언급할 때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자료조사를 굉장히 많이 하고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도둑맞은 얼굴」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리얼함에 놀라게 돼요. 「도둑맞은 얼굴」에서 평범하고 성실한 노동자가 조직에 함몰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가 소름이 돋았습니다. 현실과 밀착한 장면과 대사를 떠올리고 표현하는 작가님의 방식이 궁금합니다.

확실히 직장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그 작품에서 리얼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웹툰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10년 이상 직장인이었고, 성격도 규모도 분위기도 각기 다른 여러 회사에 다니며 정말이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좋은 일, 웃긴 일, 억울한 일, 황당한 일, 놀라운 일도 많이 겪었지요. 그런 경험들이 제 안에 있다가 이야기를 만들거나 캐릭터를 창조할 때 도움을 주는 듯해요. 또 이러한 직접 경험 말고도 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를 끊임없이 보며 간접 경험을 해 왔으니 그 역시 창작의 소스가 되어주고 있겠지요.

『거짓말들』 수록작 중 가장 재미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꼽히는 「고양이는 건들지 마라」
「어쩌다 그 밤에」

그러면서도 늘 유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에도 역시 산뜻한 유머가 가득하고요. 작가님에게 유머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종 진지하고 묵직한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거기에 유머가 살짝 들어가 있다면 더더욱 좋습니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이야기를 따라가고 해석도 하고 숨은 뜻은 없는지 찾기도 하느라 미간에 힘을 주고 긴장하잖아요. 가끔 유머가 탁 나와주면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죠. 그러다가 다시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갈 때 두근거림도 있고요. 일종의 완급 조절이랄까요? 뭐 그렇게 치밀하게 계산한 건 아니지만요. 재미있는 게 보는 사람에게도 쓰는 사람에게도 즐겁고 좋잖아요.

「이빨자국」

애초에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책이라고요. 작가님의 작품은 웹툰으로 먼저 만났던 기억이 익숙한데, 단행본으로 준비한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웹툰 플랫폼은 아무래도 ‘장편 주간 연재’가 중심입니다.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분량에 대한 기준이 이 정도로 높진 않았는데, 지금은 주당 70컷 이상은 되어야 독자들이 만족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버렸죠. 갖고 있던 소재 중 몇 개는 장편으로 확장해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편일 때 더 강렬하고 깊은 여운을 주는 소재들이었어요. 30컷이면 되고, 30컷이어야만 좋은 내용을 웹툰 연재를 위해 굳이 70컷으로 늘리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곧장 단행본으로 낼 다짐을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심지어 2페이지짜리 작품도 있을 만큼!) 오직 내용에만 집중해서 작품을 그린 경험이었고, 정말 좋았습니다.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넘긴 『술꾼도시처녀들』

첫 작품인 『술꾼도시처녀들』은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 이야기, 특히 술 좋아하는 여자들 이야기는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와 친구들 모두 술꾼인데, 어느 날 니노미야 토모코의 『음주가무연구소』를 보고는 “왜 한국에는 술꾼 만화가 없지?” 하게 된 거예요. 술을 빚거나 소개하는 만화는 있을지 몰라도 술꾼 자체를 다룬 건 못 봤던 거죠. “우리 이야기가 없어? 그럼 내가 해보지!”라고 술자리에서 호기롭게 외쳤고, 다음날 바로 A4 용지에 300원짜리 플러스펜으로 쓱쓱 그려서 아마추어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아니,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고) 술 냄새 풀풀 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보려던 거였죠. 몇 주 올리고 인제 그만둬야겠다 생각할 무렵 출판사와 다음웹툰에서 차례로 연락이 와서 정식으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좋습니까?』

『하면 좋습니까?』에서는 결혼에 대한 여자들의 고민과 동거, 비혼 등을 다뤘습니다. 당시 저도 실시간으로 연재를 따라간 독자였는데요, 늘 댓글창이 뜨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관심 있고, 여러 이야기를 불러오는 주제였기 때문이겠죠.

『술꾼도시처녀들』은 30대 여성들의 음주 라이프와 우정, 직장 이야기 등을 다뤘는데, 결혼에 대한 이야기만 전혀 없었어요. 30대라면 결혼에 대해 한 번쯤 숙고할 때가 있는데 말이죠. 결혼에 대한 고민만 따로 떼어내 『하면 좋습니까?』에서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결혼/비혼’ 문제였어요. 젊은이들이, 특히 여성들이 이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한국 사회 전체가 당황한 것 같았죠. ‘왜 안 하지? 뭐가 문제지?’ 온갖 추측과 오해들이 난무하고 설전이 오가고 한바탕 난리였죠. 여성들이 왜 결혼을 꺼리게 됐는지, 아니, 애초에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지, 그런데도 결혼을 한다면 어떤 사람과 어떻게 결혼 생활을 잘 꾸려야 하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잘 노는 숲속의 공주』 표지

스페인 작가 신타 아리바스(Cinta Arribas)와 협업해 『잘 노는 숲속의 공주』라는 그림책을 작업하기도 했어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 작업은 작가님께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듯한데요, 그림책 작업할 때는 어떤 점에 특히 신경 썼나요?

그림책 작업은 흥미로우면서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어요. 책을 볼 어린이 독자가 공감하고 기쁨을 느끼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자꾸 어른인 내가, 책을 살 어른 구매자를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조금만 방심하면 교훈적인 메시지가 자꾸 들어가려는 거예요. 이 책의 주인공은 소위 ‘핑크기’라고 하는, 핑크색 공주 옷에 열광하는 시기의 여자아이인데, 원래 초고는 이 여자아이와 엄마가 서로의 옷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거였어요.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과 그게 당황스럽고 걱정되는 엄마의 마음을 둘 다 담아보고 싶었죠. 그런데 두 사람이 나오자 자꾸만 힘의 균형이 엄마 쪽으로 쏠리는 거예요. 어른들은 공감할지 몰라도 아이가 볼 땐 자기 취향이 부정당하는 느낌일 것 같았죠. 그래서 원고를 다 엎고, 어른이 아예 등장하지 않고 아이들만 나오는 이야기를 새로 쓰게 됩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과 달리 그림책은 독자 눈높이와 입장에 대한 고민을 훨씬 다각도로 했던 기억이 나네요.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 표지

『잘 노는 숲속의 공주』 『해장 음식: 나라 잃은 백성처럼 마신 다음 날에는』으로는 그림이 아니라 스토리와 글로 독자를 만났죠. 만화가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고 뿌듯해요. 이야기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만화 작업을 할 때도 콘티를 짜는 과정이, 머리가 뽀개질 것 같지만 그마저 포함해서 너무 즐거워요. 반면 그림은 여전히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애초에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기본이 안 되어 있달까요. 그나마 여러 해 그리다 보니 지금은 좀 늘어서 다행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작가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야기 짓는 건 좋아하지만 그림 그리는 게 어려운 만화가. 그렇다면 시나리오나 대본, 혹은 소설을 쓰면 되지 않나 질문을 받기도 하고 혼자서도 종종 생각해 보곤 합니다. 사실 유혹이 없지 않아요. ‘아침 조회 시간, 운동장에 전교생이 나와 섰다.’ 이걸 글로 쓰면 한 문장으로 끝인데 만화는? 전교생을 다 그려야 하는 거예요! 으악! 하지만 또 학생들의 표정과 자세와 날씨와 분위기 등등을 한눈에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의 매력을 못 버려서 결국 손목이 떨어져라 만화를 그리게 되네요. 더구나 이번에 『거짓말들』을 그리면서 컷 연출의 재미까지 맛을 본 터라, 아무튼 최소 한 번은 더 만화를 그리게 될 것 같습니다.

「보는 애」(좌), 「페어웰 파티」(우)

시대, 사회와 붙어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일에 탁월하다고 느껴요. 작품과 사회를 떨어뜨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나요?

특별히 의식하거나 노력하는 건 아니지만, 중심이 되는 이야기 곁에 당대의 사회 문제를 살짝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두 사람만 등장하는 내밀한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만으로도 채울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그 해 있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보는 장면을 꼭 넣고 싶어집니다. 그들이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반응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줄 수도 있고, 뉴스를 보면서 느낄 분노나 막막함이나 슬픔 등의 감정이 두 사람의 정서나 관계,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단순하게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기록, 훗날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2022년의 작가가 남길 수 있는 작은 기록이기도 할 겁니다.

미깡의 작업실 책장.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거짓말들』로 한 칸을 더 채우게 됐다고.

작업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나 마음에 대해 들려주세요.

좀 근사하고 멋진 말이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고…. “오늘은 오늘의 일을 하자”라고 자주 중얼거립니다. 할 일이 태산 같아서 막막할 때 스스로 다독이는 말이죠. 올해는 내내 『술꾼도시처녀들』 리마스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려야 되는 분량이 대략 300 페이지, 1200개 컷이에요.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그리나 싶고 한숨만 나왔는데 그냥 하루하루 묵묵히 작업하다 보니 어느덧 끝이 보이네요. 기쁜 일이 있든 슬픈 일이 있든 기분이 좋든 나쁘든 영감이 오시든 안 오시든, 하루에 정해놓은 만큼 ‘오늘의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바람은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음, 너무 단순한 대답이지만 정말 머릿속에 그 생각뿐이에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 욕심을 더하자면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우리들 삶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 짓는 일을 계속, 열심히 할 테니 관심 갖고 지켜봐 주세요. 아, 먼저 『거짓말들』부터 꼭 읽어주시고요~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미깡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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