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4

태오양 스튜디오의 향 브랜드, 시낭

미래와 우주의 기억을 향으로 담다
시간 여행자 ‘보Vo’는 메타버스의 가상 공간 속에서 미래와 우주를 여행하며 살아간다. 여정을 통해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마주한 보. 그는 자기의 경험을 ‘인공 자연' ‘이국' ‘브이루빈' ‘지성의 향' ‘스위트 코스모' 총 다섯가지 글과 향으로 기록한다. 미래 속 경험을 품은 보의 서사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의식적인 질문들이 녹아있다.
시간 여행자 보Vo ©sinang

5월의 어느 날, 보의 시간이 담긴 향과 미래를 여행하는 포털 즉, 시간 주머니 <시낭>은 세운상가에 불시착한다. 전자기기 매장들이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곳에 자리한 시낭은 주변 상점들과 통일된 형태의 외관으로 자연스레 존재한다. 하지만 시낭 내부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의 파편처럼 낯설고 이질적이다. 보의 향수들이 우주 쓰레기를 연상시키는 미지의 광물과 조화를 이루며 공간에 전시된 풍경은 깊은 시각적 잔상을 남긴다. 한편 쇼룸을 가득 채운 미래적이며 감성적인 향의 조향 방법 또한 독특한데 이는 기존의 조향사가 아닌 웹을 통해 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시낭만의 독자적인 조합 프로그램을 이용해 선보이는 방식을 활용한 것. 이처럼 브랜드를 구성하는 모든 유무형의 요소에서 우주와 미래를 품은 일관적인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향이라는 감각적 매개체를 통해 더 나은 미래, 긍정적 변화를 위한 담론을 제시하는 시낭. 브랜드를 기획한 양태오 디자이너를 만나 시낭과 시간 여행자 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낭 쇼룸 내부 전경 ©sinang

Interview with 양태오

시낭 대표

 

 

시낭은 어떤 브랜드인지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시간 주머니라는 뜻을 가진 시낭은 제가 쓴 다섯 편의 소설을 모티브로 한 향을 제안해요. 시낭이란 소재는 소설가 복거일 님이 쓰신 <역사 속의 나그네>라는 소설에서 큰 영감을 받았죠. 소설을 보면 한 사대부가 시간 주머니를 타고 조선시대처럼 먼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반대로 저는 시간 주머니를 타고 2500년대 처럼 굉장히 먼 미래, 세기말로 떠나는 스토리를 구상했어요.

시낭 쇼룸 내부 전경_보가 우주와 시간을 여행하는 포털이 놓여있다. ©sinang

디자이너님은 주로 한국의 전통 그리고 현대적인 미감의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전개해왔죠. 이번에 선보이는 시낭은 지금까지 선보여온 디자인과 결이 달라 인상적입니다. 우주와 우주의 조향사. 어쩌면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작업 자체가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그리는 일이에요. 저는 언제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지어 생각하죠. 이번에는 미래에 중점을 둔 브랜드를 선보이고 싶었고요. 디자인을 하며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시낭의 다섯 가지 픽션과 향을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그러한 물음을 제시하고요. 제가 이번에 선보인 미래는 상당히 비관적이에요. 인간은 더 이상 지적 활동과 사고를 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대신 내려주는 AI에 의존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시대를 표현하거나 계속된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지구의 생물은 대멸종하고 결국 달로 이주하게 된 인류를 상상하죠. 각각의 소설은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되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행동을 취해서 지금의 삶을 개선하고 긍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이렇듯 머지않아 도래할 미래에 대한 담론을 펼쳐놓는 거죠. 그런 점에서 브랜드가 단순히 비주얼적으로 우주를 표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sinang

시낭은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디자이너님의 고민이 집약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시낭 역시 전혀 다른 맥락의 디자인이 아닌, 지금까지 제가 전개해 온 프로젝트와도 일맥상통해요. 저는 북촌에 살기 시작한 후로 전통과 오랜 시간을 머금은 귀중한 골목, 한옥들이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것을 목격해 왔어요. 이런 현상을 경험하며 ‘이게 과연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것인가? 문화가 하나의 장식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닌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어떤 액션을 취할 수 있을까?’와 같은 다양한 화두가 제 안에서 생겨났어요. 디자이너로서 걱정,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올바른 미래를 어떻게 제안할 수 있겠냐는 고민은 시낭으로 이어졌죠.

©sinang

그렇다면 그런 이야기들이 시낭의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나요?

 

쇼룸의 경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배경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주인공 보는 세운상가에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매장 역시 세운상가에 오픈을 하게 됐죠. 그리고 보는 자신의 여행기를 향으로 기록하는데요. 그가 모아 놓은 향이 담긴 캐비넷이 이곳에서 열리게 된 거죠. 시간 여행자가 우주와 시간을 여행하는 포털 또한 쇼룸에 마련돼 있고요. 공간을 채우는 소품과 가구 역시 우주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하나의 예로, 우주에서 날아 들어온 우주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이 큰 문제인데요. 디스토피아적이지만 이를 표현하는 돌들을 매장에서 함께 보여주고 있죠. 한편 시낭은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해요.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비닐을 사용하고, 향수 포장은 별도의 박스 패키지 대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펠트 파우치를 제작해 담아드리죠. 시간 여행이 콘셉트인 만큼 항상 함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패키지를 만들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모든 그래픽은 미래적인 이미지로 디자인하고 있죠.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 스튜디오와 작업을 했는데요. DEGS: Creative Consultancy(크리에이티브 컨설턴시 덱스)에서 시낭의 로고와 VR을 제작해 굉장히 흥미롭고 미래적인 비주얼을 만날 수 있어요.

©sinang

수많은 제품 카테고리 중 향에 주목한 이유는요?

 

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인데요. 완벽하고 깊이 있는 공간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장식이 필요해요. 음악, 조도, 향과 같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요소는 공간에 특별한 감성을 부여하죠. 그래서 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탐구해 왔어요. 미래, 디자인,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요소에 대한 제 생각과 고민이 모두 모여 결국 향에 집중한 브랜드가 탄생한 거죠.

©sinang

이번에는 장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보는 왜 세운상가를 자신의 공간으로 선택했을까요?

 

제가 본 세운상가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품고 있는 곳이에요. 옛 건물임에도 직접 가서 살펴보면 상당히 미래적이에요. 힙하고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세운상가는 그래서 찾기도 쉬워요. 하지만 막상 내부로 들어가면 굉장히 미로 같은 형태가 나타나죠. 이렇듯 세운상가는 상반된 개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서울의 몇 안되는 미스테리한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여기에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늘 갖고 있었고요. 한편 을지로라는 지역은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데요. 세운상가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서 있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거에요. 그 때문에 제가 소설을 구상할 때도 주인공 보가 숨어 사는 공간은 이곳 세운상가일 수밖에 없었죠.

©sinang

시낭에서 선보이는 다섯 가지 향 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인공 자연Artificial Nature과 인권 문제를 논하는 브이루빈V.Rubin이라는 향을 소개하고 싶어요. 베라 루빈Vera Rubin은 천문학자로서 우주 연구에 관한 지대한 업적을 세웠는데요. 우주 물질 중 ¼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한 장본인이죠. 우주를 공부하면 베라 루빈의 연구와 발견을 피해 갈 수 없어요. 그가 천문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았어요.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여성이기에 결국 수상하지 못했죠. 브이루빈은 암흑 물질의 존재 여부를 떠나 순수한 열정으로 아름다웠던 베라 루빈에게 헌정하는 향수에요. 또한 브이루빈을 통해 우리들의 의식에 대해 논하고자 했죠. 말씀드린 인공자연과 브이루빈은 향과 그 안의 이야기를 통해 환경과 인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브랜드로서 시낭의 중요한 특징이 드러나는 향이에요.

 

 

시낭은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기를 바라세요?

단순히 아름다운 향에 치중하는 브랜드가 아닌 의식과 감성을 전달하는 향 브랜드로서 기억되고 싶어요. 시낭을 통해 의미 있는 미래를 찾아가길 바라죠.

©sinang

디자이너님은 국내외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외에도 브랜드 이스라이브러리, 이스턴에디션, 그리고 시낭까지 운영하고 있죠. 이렇게 많은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원동력 혹은 영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저는 단지 디자이너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제 눈 앞에 어떠한 문제 혹은 고민거리가 생기면 이것을 빨리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토론하고 이야기하려 해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뒷전으로 숨기기보단, 이를 직시하고 디자인으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원동력을 얻는거죠. 이스라이브러리와 이스턴에디션으로 예를 들게요. 한방은 우리나라 학문의 한 분야죠. 한방을 구시대의 산물로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문제의식을 담아 이를 동시대적으로 표현한 브랜드가 이스라이브러리에요. 이스턴에디션 역시 한국의 미학 중 조선시대 후기 미학을 더욱더 알리기 위해 시작한 브랜드고요. 이처럼 저는 제가 마주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브랜드로 표현할 수 있을지 끊임 없이 질문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공유하며 영감과 원동력을 얻고 있어요.

태오양 스튜디오는?

양태오 디자이너가 이끌고 있는 서울의 태오양 스튜디오는 로컬 문화와 오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 미학이 기반한 독창적이고 모던한 비주얼을 만들어내고 있다. 2021년 8월, 태오양 스튜디오는 파이돈 프레스에서 출간한 에서 한국에서는 최초로 100인 리스트에 올랐다. <바이 디자인>은 90 명의 권위 있는 심사위원이 선정한 전 세계 100명의 디자이너의 작업을 소개한다. 세계 공간 트렌드를 만드는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떠오르는 스타 디자이너를 동시에 조명하며 이들은 모두 공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기여도를 인정받은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가들이다. 선정 디자이너로는 이탈리아의 듀오 디자이너 디모레 스튜디오, 프랑스의 조셉 뒤란드, 중국의 네리앤후 스튜디오, 영국의 페이 투굿, 덴마크의 놈 스튜디오, 벨기에의 빈센트 반 두이센 등이 있다. 태오양 스튜디오는 로컬 문화가 빠르게 변모하고 사라지는 시대에 한국 고유의 미학을 안정적이면서 멋스럽게 재탄생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립경주박물관 로비와 삼청동 국제갤러리 리뉴얼 작업 등 예술적이고 개성 있는 최근 프로젝트를 <바이 디자인>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이건희 객원 필자

자료 제공  태오양 스튜디오

장소
시낭
주소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9, 가동 4층 바열 440호
링크
홈페이지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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